Fixation(집착) W. 제이치(blog.naver.com/jae_ch) -2차 수정을 금합니다. 그러니깐, 왜 하필 나라는 거냐고. 난 아직 신인이고, 무엇보다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중요한 계약을 하는 미팅이라면서 거기에 나를 내보내겠다니. 이 회사가 미쳤나. "안가요." "종현아.." "저 못해요, 그런거." 소속사 상무 앞인데도 눈을 똑바로 뜨고 부정의사를 확실히 밝히니, 곤란하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매니저 진기 형은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람. 불편한 정적이 흐르고, 한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고민하던 상무가 나지막한 톤으로 말을 꺼냈다. "네가 당황할까봐 이건 말안했었는데, 그 분이 직접 널 보고싶어하셔. 우리도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달리 다른 방법이 없다." "예?" "우리 이번에 그 회사랑 계약 깨지면 광고수입 30퍼센트 가까이 절감해. 그건 우리 회사 자금에도 큰 타격이 갈거고, 그러면 준비중인 네 앨범에도 차질이 생기겠지." "......." "미안하다." 저 말은 곧, 갔다오라는 뜻이겠지. 그리고 가서 생기는 일은 책임 못진다는 사과의 의미고. 알만하다. 내가 딱히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그런건 아니다만, 대체 그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갔다올게요." "종현아.." 이제와서 미안한척 하는 상무의 앞에 놓인 종이를 낚아채듯 집어들었다. 호텔의 위치와 룸번호 등이 프린트 되어있다. 시간은 오늘 오후 9시. 그다지 여유있지도 않은 시간이다. 뭐야 이거. 내가 끝까지 싫다고 하면 억지로 끌고라도 갈 생각이었던 건가. 너무하네들. 인사도 않고 가방을 챙겨 상무실을 나오니, 진기 형이 급하게 뒤따라 나온다. "종현아..!" "왜." "..데려다줄게." "됐어. 나 혼자 택시타고 갈게." "미안.." "형이 왜." "......" 형이 잘못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무와 한패라는 생각에 심술돋은 말투가 앞선다. "갈게." 무표정하게 뒤돌아서 나왔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순간 휘청- 했다. 나, 긴장했나. 하긴, 이런건 처음이니깐. 데뷔하기 전부터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거니깐. 미팅을 빙자한, 접대.. 호텔 입구를 들어서니, 점점 머릿속이 비워진다. 룸안으로 들어서면 머리가 딱 굳어서 멈춰버리는건 아닌지. 나름 강심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갈색빛이 도는 머리를 한차례 정리하고, 체크무늬 난방 깃을 바로하고, 심호흡을 하는데 벌써 25층에 도착해있다. 성큼성큼 걸어서 2501호 앞까지 오긴했는데, 벨을 누르려니 또 망설여졌다. 그냥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버릴까. 그럼 나 잘리는건가. 어떻게 들어간 회산데.. 잘리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게 나을 것 같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만은.. 복잡해진 머릿속이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냥 눈을 감고 벨을 눌러버렸다. 평범한 벨소리지만, 지금만큼은 기분나쁘게 느껴진다. 벨소리가 복도에 한차례 울렸지만, 문이 열리지도, 대답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거, 뭐지? 안에 아무도 없는거 아닌가. 나, 그럼 가도 되는건가. 순식간에 희망이 나를 점령했다. 질끈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뜨며 발걸음을 막 옮겼는데, 믿고싶지 않게도 문이 벌컥 열렸다. "......" "성격 되게 급하네." 반쯤 몸을 돌린 나를 보고 내밷은 '그 인간'의 첫마디였다. 룸에 들어왔고, 작은 원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았는데, 정신은 아직 룸밖에 있는지 멍-하다. 대외적인 목적인 계약 내용이 적혀있는 서류는 저쪽 쇼파 한쪽에 널브러져있고, 테이블 위에는 딱봐도 흔해보이지 않는 양주병들이 정갈하게 세워져 있었다. 흐트러져있는 얼음통과 집게, 그리고 붉은 톤의 액체가 고여있는 그의 잔 밑바닥을 보니, 내가 오기전에 이미 몇 잔 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분위기가 더 묘하게 느껴졌던 걸까. 그가 새 잔을 꺼내서 얼음을 담고 양주를 따라서 내게 건넸다. 크로스백을 쥔 내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저걸 받아야 돼, 말아야 돼.. 고민하던 차에,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목울대에서만 웃음이 울리고 금방 멎었다. 조심스럽게 시선을 잔에서 그의 얼굴로 옮겼다가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분명 웃고있는데, 표정이 너무 서늘해서. "받아." 명령적인 어조. 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들게 만든다. 우습게도 잔을 받아드는 손이 덜덜 떨린다. 그는 웃고있지 않지만, 아까의 그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울린다. 받아서 차마 입가에 대진 못하고 두손으로 잔을 쥐고 있는데, "마셔." 또다시 그 명령에 따르고 만다. 꺾지도 못하고 한번에 다 털어넣으니 잘했어, 하며 내 손에서 잔을 거두어 간다. 딱 한잔 마셨는데 순간 테이블이 출렁거린다. 급작스럽게 몰려오는 어지러움때문에 고개를 흔들고 정면을 보는데, 그가 자리에 없다. 그제서야 그가 단단히 붙잡고 있는 내 팔에 감각이 느껴진다. 그가 팔에 힘을 주자, 반사적으로 머리에서 거부반응이 드는데 이미 제어기능을 잃은 내 몸은 힘없이 딸려간다. 쇼파에 던지듯 날 놓자, 등 뒤에서 바스락 거리며 서류들이 구겨지는 소리가 난다. 나 이 서류들에 도장찍으러 온건데. 이거 중요한건데 이래도 되나. 하지만 그는 전혀 상관 없는듯, 다른데에 관심을 보인다. 내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던 그가 말했다. "이런 물건을 그 회사에서 쥐고 있을 줄은 몰랐어. 나한테 발견된게 그 회사한테는 행운이겠지만, 너한텐 행운일지 불운일지 모르겠다." "......" "벗어." "..안돼요." "안돼?" 그의 눈이 매섭게 치켜올라간다. 안그래도 서늘했던 얼굴이, 이제는 대놓고 험악해진다.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표정하나만으로도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지게 만들었다. "아직 제정신인가." 중얼거리며 아까 그 테이블쪽으로 가더니 양주병 하나를 들고 온다. 뚜껑을 열고 한모금 마시는 듯 하더니, 내 양볼을 눌러서 입을 벌리게 하고 양주를 입안에 쏟아붓는다. 도수 높은 알콜이 혈관을 타고 빠르게 돌면서 정신이 맘대로 오락가락 한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아직까지 덮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내 혀를 맘대로 유린하는 그의 혀를 세게 깨물어 버렸다. 그래 봤자, 힘이 빠져서 피만 살짝 고일 뿐이었다. 나한테서 잠깐 떨어져서 날 노려보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눈을 마주하면서도 잠깐잠깐 정신이 암전되었다가 돌아왔다.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이도저도 안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화가 난 듯 거칠게 내 난방을 벗겨낼 동안에도 끝까지 버텼다. 얌전히 있는 척 기회를 노리다가, 그가 내 검은 민소매 끝자락에 손을 댔을 때, 온 힘을 다해서 그의 얼굴을 쳤다. 정말 말 그대로 쳤다, 주먹으로. "미쳤구나, 너."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말투로 저런 말을 한다. 그는 내 몸에서 손을 때고 숙였던 몸을 바로세웠다. 쇼파에 누워서 숨을 몰아쉬며 그를 올려다보는데, 얼굴이 불덩이처럼 화끈거린다. 내가 버틸수 있는 한도의 주량을 한참 넘기고서도 너무 오래 깨어있던 탓이다. 머리가 어지럽다 못해 아파온다. 그가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꾹 눌러온다. "너 정말 아예 할 의지가 없구나." "......" "좋아. 억지론 안해." "......" "대신, 내 앞에서 스스로 기도록 만들어주지." 이게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정신을 내려놓으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아득해져가는 내 귓가에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어와 박혔다. "한번에, 무너트려줄게." "으..." 타는 듯한 갈증에 목을 움켜쥐고 일어났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더듬더듬 방을 나가서 냉장고로 향했다. 다행히 물이 있었고, 생수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갈증이 해소되니 살것같은 마음에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재빨리 몸부터 살피니, 난방을 제외하고는 다 입고 있었고, 흉터도 없고 아픈 곳도 없고 멀쩡했다. 심지어 머리까지 멀쩡했다. 역시 비싼 양주라는건가. 어제 그 구겨진 서류들은 여전히 쇼파위에 나뒹굴고 있고, 양주들도 그 위치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데, 룸이 왠지모르게 휑- 했다. 아, 그 인간이 없어서 그렇구나. 어제 기억이 드문드문 떠오른다. 내가 그의 얼굴을 때린 장면이 불쑥 생각났다. 아... "망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하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있는 명함 하나가 보였다. "최..민호.. A그룹 대표 이사..?" 대표 이사...?! 그럼 어제 그 인간이 A그룹 사장이었단 말이야? 딱봐도 젊어보였는데, 정말 어마어마하다.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에 멍하니 명함을 응시했다. 그러다 나한텐 별로 필요없을 것 같아서 기분 나쁜 명함을 마구 구기고 있는데, 문자 알림소리가 들려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어제 저지른 일이 다시 상기되면서 문자를 확인하기기 두려워졌다. 심호흡을 하고 실눈으로 문자를 확인하는데, 심장이 덜컹 한다. [지금 빨리 상무실로 와라.] 발신인은 상무님. 하긴, 어제 내가 그렇게 했는데 그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건 말도 안되지. 상무실에 가면, 싹싹 빌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해야겠다. 회사가 입은 손해 같은거, 내가 열심히 해서 앨범판매량이랑 방송활동으로 다 메꿀것이라고. 그런데, "잘했다, 종현아. 나는 네가 잘 해낼줄 알았어." 내가 상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격하게 반기며 웃어주는 것이 아닌가. 지금 반어적으로 표현하는건가 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건 아닌듯 했다. 뭐지, 어떻게 된거지. "A그룹이랑은 계약이 잘 성사 되서, 우리가 하던 광고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됬다. 덤으로 앞으로 우리 소속사 오디션 비용까지 A그룹에서 지원해주겠다고 했으니.." "대체 왜요..?" "그건 네가 더 잘 알테지." 상무가 나를 보고 아리송한 미소를 짓는다. 지금 나 놀리는건가? 상황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거지. 불안하게.. "그리고, 이거." ".....?" 상무가 내게 수상스런 봉투를 건넨다. 계약 성공시켜서 주는 보너스 같은건가..? 그럴리가 없지. 나는 계약을 성사시킨적이 없는걸. "그동안 수고했고, 앞으로 잘되길 빈다." "그게 무슨.."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면 어디 가서든 성공할 수 있어." "저.. 상무님..?" "위약금은 A그룹에서 다 물어줬으니 걱정하지 말고." "예??" "그만 나가봐. 밖에 손님이 와있어서." 내쫓기다 시피 상무실을 벗어나서, 급하게 봉투부터 열어봤다. "......" 말도 안돼. 봉투에는, 내 소속사와 나와의 계약이 해지되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상무님은 더이상 날 만나주지 않았고, 매니저 형은 어딜 갔는지 연락조차 되질 않았다. 난동을 부리다가, 회사에 있는 내 짐들과 다 함께 강제로 숙소로 이송됐다. 숙소는 일주일안에 비워달라나 뭐라나. 화나서 앞뒤 따질 것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다. 이럴려고 일부러 명함을 두고 간거였어. 개자식. 직접 찾아가니, 의외로 또 쉽게 만나준다.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서 사장실 앞까지 왔다. 안내원이 노크를 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건, 책상에 반듯하게 올려져있는 삼각명패 ? 대표이사 최민호라고 써져있는. 그리고 앉아서 한손엔 펜을, 한손엔 서류를 들고 있는 그, 최민호. 당황해서 서있는 안내원에게 그가 나가라는 눈짓을 하자, 안내원이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그는 닫힌 문을 한번 보고, 그리고 날 한번 응시하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고정했다. 날 신경도 안쓰는 그에게 화가 오를만큼 올랐다. "니가 뭔데, 날 회사에서 잘라?" 사장이고 뭐고, 뵈는게 없으니 반말부터 튀어나간다. 그러든 말든 서류 뭉치들만 뒤적거리며 본인의 일을 하는 최민호였다. "너가 그렇게 잘났어? 그깟 회사 하나 운영한다고, 가수하려고 아둥바둥 하는 내가 우스워 보였니?" "......" "내가 연습생 생활을 몇 년이나 했고, 데뷔하려고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데!! 어떻게 그걸 한순간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이를 악 물었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이건. 여기서 울어버리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게 뻔히 보였다. 최민호 앞으로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모든걸 제자리로 돌려놔 달라고 울면서 사정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게 저 남자가 바라는게 아닐까. 바라는대로 해 줄수는 없지. 씩씩거리며 탁자에 놓인 물을 들이켰다. 여전히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물이 반쯤 담겨있는 물컵을 들고 그의 앞으로 갔다. 촤악- 머리를 향해 냅다 부어버렸다. 머릿결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서류도 한가득 젖어갔다. 그가 쥐고 있던 펜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탁 소리에 맞춰 내 몸도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그자리에 서있었다. 어디, 칠테면 쳐보라지. 머리를 한차례 털고 고개를 든 그는, 그제서야 제대로 나를 마주했다. 생각보다 화난 얼굴이 아니여서 놀라고, 갑자기 벌떡 일어서기에 또 놀랐다. 한걸음에 내앞까지 온 그는, 내 양팔을 휘어잡았다. 벗어나려했는데, 어째 힘이 풀린다. "앙탈 다 부렸으면, 이제 가서 낮잠자야지."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는데, 진짜로 다리에 힘이 풀린다. 뭐야 이거. "너.. 저 물에 뭐..ㅌ.." 순식간에 몰려오는 졸음 때문에 말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나를 번쩍 안아들고 쇼파로 가서 눕히는 그를 향해 마지막 힘까지 짜서 말했다. "개..으.., 새.. 끼.." 기분나쁜 미소를 마지막으로 나는 또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놓고 말았다. "음.... 으..." 불편한 자세로 오래잘 때 처럼 몸이 부자연스럽게 뻐근해서 눈이 절로 떠졌다. 자동으로 손이 눈가로 올라가려는데, 무언가에 의해 제지당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껴서 상체를 일으키려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지가 어딘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그것도, 나체로. "깼어?" 하..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오려한다. 진짜.. 뭐냐, 이 공포의 빨간방은. 붉은 빛의 조명이 은은하게 깔린 이 곳은, 내가 아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로 널려있었다. 벽에 쇠고랑을 비롯한 고문 도구로만 알고있는 것들이 걸려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다란 막대기에, 하다못해 채찍까지.. 겉모습은 아주 멀쩡하고 럭셔리한 대표 이사님이, 뒤에선 이런 황당한 취향을 가지고 계셨을 줄이야. "너, 동정 맞지?" "......" "처음이니, 봐준다." 선심을 베푸듯 날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고정장치들을 풀어주는데, 전혀 자비로워 보이지 않았다. 저린 손목을 돌리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는 날 관찰하듯 주시하고 있었다. 아깐 수트를 제대로 갖춰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팔을 걷어붙인 흰 와이셔츠에 정장바지 차림이다. 여유롭게 날 훑던 눈빛이 어느순간 확- 돌변한다. 내 앞으로 훅 다가온 얼굴이 입술이 부딪히기 직전 멈춘다. 반항할 시간이라도 주는건가. 어차피 내가 반항해도, 결과는 똑같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 의지로 하는게 낫겠어. 내 눈앞에 있는 그 입술에 먼저 선수를 쳤다. 그 쪽에서 당황한 듯 고개가 부자연스럽다. 한방 먹였다고 생각되니, 통쾌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결국엔 지는 건 나다. 격한 혀놀림을 결국엔 다 받아내지 못하고 반쯤 누워서 팔꿈치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침대인지 테이블인지 모를 딱딱한 데에 눌려서 아프다는 생각이 들때쯤, 그가 입술을 뗐다. "갈수록 마음에 들어- 김종현." "헉- 헉-"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하군." 내가 숨을 고를동안 그는 한쪽에서 밧줄을 찾아서 들고 왔다. 의도는 뻔히 보였다. 그가 내 양 손을 가져가더니, 잘 겹쳐서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보통은 뒤로 묶지만, 그러면 정상위가 불편하겠지." "......." "영광으로 알아. 정상위를 해보고 싶은 상대는 네가 처음이니까." ..뭐라는거야 이 미친자식이. 한두번 묶어본 솜씨가 아닌듯, 능숙하게 내 양 팔목을 고정시킨 그는, 나를 뒤로 밀었다. 팔이 묶여서 지지를 할 수가 없으니, 몸이 자연스레 눕혀졌다. 날 눕혀놓은 그는 내 몸을 그의 쪽으로 당겼다. 그리곤 몸을 확 숙이더니, 거칠게 내 뒷통수를 움켜쥐고 다시 입술을 부딪혀왔다. 나는 그 혀를 받아들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아까부터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건, 여기가 어떤 곳인지 인지한 순간부터 내 몸이 나도모르게 흥분되고 있었다는 것. 그가 키스를 하는 동안, 이미 반응해버린 몸은 움찔움찔 떨려왔다. 내 상태가 이러니, 그 또한 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자신의 하의를 한손으로 풀어헤치며 내 아래에 급하게 두 손가락을 찔러넣었다. 고통스러운 와중에, 거부반응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내 다리는 좀 더 편한 자세를 위해 양옆으로 벌어졌다. 자신의 눈앞에서 양 다리를 활짝 벌린 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는 내 안에 집어넣었던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니가," "흐.." "니가 부추긴거야, 김종현."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도 전에, 자신의 아래를 해방시킨 그가 단번에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제대로 풀어지지 않은 그곳에, 거대한 것이 갑작스럽게 꽂히니 당연히 힘이 들어갔다. 그가 손으로 내 엉덩이를 짝- 치며 젖꼭지를 있는 힘껏 비틀었다. "아읍..! 윽!" 고통과 묘한 쾌감이 함께 어우러지며 순식간에 이성이 점령당했다. 본능적으로 그를 갈구하는 내 몸이, 그의 몸을 빈팀없이 감쌌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그가 내 양 발목을 잡고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했다. 자꾸만 힘이 풀려서 다리가 미끄러지려는데, 이번엔 내 것을 괴롭혀온다. 터질듯 꽉 쥐어오는 그의 손에 허리가 들썩였다. 무언가라도 쥐고 지탱하고 싶은데 묶여있는 손으론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내 몸의 무기력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날 완벽하게 지배해버린 쾌감에 눈물이 맺히는게 느껴졌다. 그 순간 그가 내 묶인 팔목을 잡아 머리 위로 올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이 쓸리며 저절로 끅끅거리는 소리가 목을통해 흘러나왔다. 퍽- 퍽-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와닿았다. 끝내 두 다리는 자리잡지 못하고 허공에서 정처없이 흔들렸다. 이리저리 헤매던 눈이 어느순간 그와 딱 마주쳤다. 눈물 때문에 흐릿하긴 했지만, 시선이 정확하게 마주하고 있다는건 알 수 있었다. 시선을 피하지도 못하고,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채 꿰뚫리고 있는데, 그가 내 입술을 물어뜯듣이 집어삼켜왔다. 그 입술을 받아내며 나도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내 몸도, 이 상황도 그냥 다 미친 것 같다. "아흡! 흐, 앗, 악..!" "후으- 헉- 헉-" 쾌락이 절정에 다르고, 그가 내 안으로 깊숙히 찔러넣음과 동시에 사정이 이루어졌다. 둘 다 동시에. 그가 내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힘없이 늘어졌던 내 다리가 그의 허리를 옥죄였다. 사정을 해서가 아니라, 그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려 한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안돼..!" "하?" "....더.." "너 미쳤지." "흐으.." "누가 더 미쳤는지 해보자고." 말을 마치고 다시 날 잡아먹을 듯 키스해 오는 그에, 나 또한 지지않고 맞섰다. 그의 손이 내 몸 여기저기를 훑어내려갔다. 지친 기색도 전혀 없이 그의 것이 다시 크기를 키워나갔다. 자극이 끊임없이 주어지자, 허리가 움찔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잠깐 잠잠했던 그의 숨소리가 다시 흥분을 표시하듯 거칠어지며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그의 손이 내 몸을 더듬고 꼬집을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극도의 쾌락이란 감각에 몸이 비이성적으로 반응을 한다. 타액이 정신없이 섞이다, 차마 다 삼키지 못해 줄줄 흘러내려서 내 뺨을 적셔갔다. 격렬한 행위에 덩달아 격해진 마찰음이 질척하게 이 방안을 울렸다. 더 이상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건, 내가 최민호에게 꿰뚫리고 있다는 사실과, 내가 참을 수 없는 쾌락에 빠져있다는 것. 마치 몸이 약을 한 것 같았다. 마약을 접해보진 않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어떠한 마약보다도 섹스는 내게 치명적이라는 것.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혀가 서로 엇갈리며 허공을 헤맸다. "윽- 더..! 더 해!" "씨발, 김종현- 내가 사람하나는 기가막히게 제대로 봤군." 내 뒷못을 단단히 움켜쥐고 그가 내 귓가에 으르렁거렸다. 닿을 듯 가까이에 마주하고 있는 그의 눈이, 미쳐있었다. 나를 향한 시선이 갈망을 너머선 집착 수준이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이 남자의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한가지 더 확실한건, 나도 굳이 벗어날 생각이 없다는 것. 지금의 정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자조적인 미소가 푸스스 새어나왔다. 여전히 내 몸은 그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렸고, 이 방은 우리의 욕망으로 인해 더욱 붉게 물들어갔다. fin_ ---------------------------------------- 네, 미친 내용이네요ㅎ.ㅎ 일방적인 S말고, S와 M의 쌍방적인 내용을 담고자 했는데, 전달이 잘 됐으련지.. 민호는 보시다시피 S기질이 넘쳐나고, 본인도 그걸 자각하고 그런 플레이를 지속해온 반면.. 종현이는 그런 관계를 가져본적이 없어서 자신의 성향을 모르고 있다가 민호를 통해 자신이 지독한 M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아가는.., 그런 낯부끄러운 이야기였습니닿 ..결론은, 호현행쇼♡